[가이드] 광주 의병운동의 심장, 어등산 전적지 탐방기 🪦
호남의병 역사, 어등산에 새겨진 헌신 기리다
#어등산 한말호남의병전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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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
어등산은 '물고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물고기는 물에서 놀지 않고 산으로 올라가면 죽기 때문에 의병들의 아픈 죽음을 산으로 간 물고기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 산에 얽힌 전설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한말의병장으로 용맹을 떨친 오성구의 어머니가 오장군을 출산하고 삼신에 대한 보답으로 황룡강에서 잡은 잉어 한 마리를 놓아주자 갑자기 구름이 일며 잉어는 용이 되어 승천했으며, 잉어가 용이 되면서 승천한 산이라 하여 '어등산'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호남 지방에서 의병들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나 목숨을 바친 숭고한 정신을 가진 인물들로 기억됩니다. 그들이 남긴 역사와 정신은 어등산에 깃들어 있으며, 이곳을 호남 의병의 추모 공간으로 조성하였습니다.
2013년, 어등산 일대가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2014년,한말 호남의병을 기념하고 선양하는 '사단법인 한말 호남의병 기념사업회'가 설립됐다.
2015년, 광주광역시도 '광주광역시 한말 의병운동 기념사업 지원 조례'를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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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의 을사늑약으로 조선은 일본의 강압적 지배를 받게 되었어요. 이에 1906년 7월 '김태원'이 호남 지역에서 의병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했어요. 이 운동은 계속해서 성장하여 1907년에는 '기삼연' 중심으로 '호남창의회맹소'라는 단체가 결성되어 일본과 대항하였습니다.
일상에서는 평범한 백성으로 위장해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면서 활동했고, 때때로 수백 명이 모여 게릴라 작전을 펼쳤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략으로 호남 지역에서 여러 승리를 거두며 의병 활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 특히 어등산은 호남 서부로의 접근성이 좋고, 주위를 둘러보기에 유리한 지형적 조건, 그리고 오르기 어려운 특징 때문에 의병들의 요새로 선택되었습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박뫼마을 인근 어등산 서쪽에서는 호남 의병과 일본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이곳에서 김태원 등 많은 의병장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라남도 광주를 중심으로 한 의병 활동은 계속됐지만, 일제는 1909년 9월부터 11월까지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을 진행하여 약 500명의 의병이 순국하고, 1500명 가까운 인원이 체포되면서 마침내 호남 의병 운동은 종결되었습니다.
✽ 내용출처: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기본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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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191-4